손지형 개인전 < MOTIVE >
제5회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손지형 개인전
< MOTIVE >
2021.9.3 – 9.19
참여작가 : 손지형
글 : 전영진
기획 : 김성근
설치도움 : 고안철
주최 : 레인보우큐브
후원 : 서울문화재단
무언가 찾기 위해서 핸드폰을 켰을 때, 무엇을 보려 했는지 잊게 되는 순간들이 자주 있다. 처음 마주하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것은 또 다른 이미지들을 불러온다. 선택은 꼬리를 물며 계속된다. 작가노트_손지형
수직과 수평에서 시작하는_전영진
잘린 나무의 표면에 나타난 여러 개의 나이테, 벽지에 남은 오래된 음료의 얼룩, 붙었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 울퉁불퉁한 타일의 결이 만든 그림자로부터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만들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보통은 실제 비슷한 모양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명확한 형상으로 구체화시키지만, 반대로 내 눈이 보는 실제 모양과는 거리가 먼 어떤 형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무의 옹이로부터 흔하게는 동물의 눈이나 사람의 배꼽 모양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유 없이 빗자루가 떠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완전히 다른 화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만약 하루에 한 번씩 모호한 하나의 모양으로부터 새로운 형상을 떠올려본다면, 매일은 꼭 같지 않을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다른 것을 떠올리기로 한다면 매일 다른 것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쉽게, 그것을 회화로 가져와 풀어낸 것이 손지형 작가의 작업이다.
회화는 사각형, 원형, 다각형 등의 형태를 가진 캔버스, 패널 등의 평평한 바닥 안쪽 공간에 작가가 해석한 세계, 혹은 세계관을 여러 가지 재료를 통해 고유한 방식의 형식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의 매체 중 하나다. 우선 표면을 채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첫째는 캔버스 크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장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캔버스 크기로 잘라내어framing 표현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화면 안을 여러 요소를 통해 감각적으로 구성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물론 두 가지가 혼재된 작품도 다수이나, 전자는 풍경, 정물, 인물 등의 실제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는 데 주로 쓰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는 데에 쓰인다. 손지형 작가의 작업은 한정된 사각형 공간을 하나의 갇힌 공간으로 미리 상정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내부 채워간다는 점에서 두 번째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상작품이 내재된 개념, 혹은 스스로 말하는 주제와 표현된 이미지의 간극이 다소 멀게 느껴지는데 반해 작가의 작품은 간극이 좁거나 없는 듯 느껴지는데, 이는 ‘모눈’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개념적 주제, 형식의 바탕, 동작의 시작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인의 감각에 따르는 다수의 여타 작업과 다른, 특별히 흥미로운 지점인데, 기본적인 틀(이면서 형태)을 스스로 상정한 상태에서 그로부터 나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스스로 모색해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회화의 역사는 그 흐름을 종교, 귀족, 카메라 등의 ‘외부 요소’로부터의 구속과 독립의 역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와 반대로 바탕의 형식이라는 ‘내부 요소’에 스스로 구속되기를 선택했다. 회화가 이미 ‘평면’이라는 실제적, 가상적 형태에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더해 단색으로 채워진 바탕이 아닌 가로세로 줄이 그어진 모눈에 시작을 둔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표면에는 그 형태가 남아있기도 남아있지 않기도 한데, 이 부분에서 작가가 수직 수평의 선들을 이용하고, 제거하며 구속과 독립이라는 반복적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공간 분할, 덧붙임, 포갬, 조합, 중첩, 가리기의 과정을 통해 파생된 것들은 그 기준점에 굴복하기도, 반항하기도, 발전되기도 하는 형태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모눈을 그대로 남겨두거나 흐리게 비치는 상태로 두기도 하고, 고정된 선을 적극 이용하거나 온전히 가려 버리기도 하며, 선 만으로 중첩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채색으로 색면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언뜻 본인의 감각에 의존한 단순한 추상에 놓이기 쉬운 기법을 영민한 주제를 기반으로 기준점과의 상호작용으로 풀어 낸 고유한 그의 방식이다.
에스키스¹ 없이 자동기술² 적으로 표현된 미적 요소들은 일부 반복되는 형태와 주로 사용되는 색채, 대칭 등의 형태가 되고, 작가의 고유한 형식으로 축적되어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작품은 사각의 공간 속을 채우는 요소로 작용하여 전시장이라는 커다란 공간을 또 하나의 거대한 작품처럼 보이게 한다. 어쩌면 수직 수평의 선으로 가득한 공간을 익숙한, 좋은 기억을 가진, 선호하는 무언가로 채우는 것은 삶의 방식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구획할 때,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책의 첫 장을 펼 때처럼 삶의 많은 것들은 수직 수평의 선 안에서 시작된다. 흔히 예술을 삶을 응축하여 표현한 결과로 말한다. 작가는 하나의 모티브를 시작으로 온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가지들이 가득한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 내듯 조합된 여러 요소로 큰 화면을 채운다. 그 작업들은 거대한 공간을, 세상을 채워간다. 작가가 캔버스 안에 집약하고 구축한 세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해지고 깊어질지 기대가 된다.
¹ Esquisse : 최종적으로 완성해야 할 그림과 설계도 등을 위해 작성하는 초벌그림(下畫), 약화(略畫), 화고(畫稿) 등의 뜻. 데생(소묘)과 수채화, 혹은 유화 에스키스도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최종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몇 점씩의 에스키스가 있다. – 한국사전연구사,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² Automatisme : 자동법 혹은 자동기술법이라 번역된다. 엄밀히는 <쉬르레알리슴 선언>에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없이, 또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감없이 행하는 사고(思考)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라 되어 있듯이 의식하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다. 쉬르레알리슴 초기에 많이 사용되었으나 폴록 등에서도 그 영향이 엿보이고, 넓은 의미로는 시나 회화에 있어서 상상력의 원천력을 지탱하는 것이다. – 한국사전연구사,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semicolon, 종이에 연필, 수채, 젯소, 오일파스텔, 21×29.7cm, 2020-2021
colon, 캔버스에 유화, 연필, 116.8×91.0cm, 2021
semicolon, 종이에 연필, 수채, 젯소, 오일파스텔, 23×15cm, 2021
semicolon, 종이에 연필, 수채, 젯소, 오일파스텔, 21×29.7cm, 2020-2021
log on, 캔버스에 유화, 연필, 왁스, 116.8×91.0cm, 2020
semicolon, 종이에 연필, 수채, 젯소, 오일파스텔, 23×15cm, 2021
semicolon, 종이에 연필, 수채, 젯소, 오일파스텔, 21×29.7cm, 2020-2021
comma, 캔버스에 유화, 연필, 왁스, 65.1×53cm, 2021
semifinal, 캔버스에 유화, 연필, 왁스, 65.1×50cm, 2021
logical, 캔버스에 유화, 연필, 왁스, 72.2×53c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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