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진 개인전 《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 Tactile Recall 》

 

 

문서진 개인전
《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 Tactile Recall 》


2022. 12. 9. ~ 12. 25


장소 : 레인보우큐브


기획: 유은순
그래픽디자인: 박채희
설치도움: 박선희, 신미지, 이웅철
제작도움: 배연미, 신미지, 박선희
움직임리서치: 김현진
진행도움: 레인보우큐브
전시사진 : 홍철기

주최 |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서진의 두번째 개인전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은 청소년기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오래 전부터 떠올려 보며,
그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기억을 그러모으며 시작되었다. 대화한 기억보다 몸으로 부대낀 추억이 더 선명했던 작가는
그가 ‘살아낸 시간’을 신체의 변화와 언어습관, 반복된 행동에서 반추하며 몸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은 관조적이기보다는 참여적이고, 관객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 면과 면, 몸과 몸이 맞닿는 감각을 일깨운다.

 

 

 

 

 

늙음 부재 사랑_유은순

 

기록되지 않은/못한 연대기는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문서진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몇 년간 지속해서 떠올려 보았다.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던 그는, 하루에 다섯 마디도 채 하지 않았고 생활 반경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찾아간 적 외에는 집안의 공간이 전부인냥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때때로 어린 서진이 보기에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잔잔하게 하루하루를 머물렀다. “내가 죽어야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할머니는 ‘살아낼 시간’보다 ■‘살아낸 시간’ 이 더 많았다. 친척분들에게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물어보아도 제대로 된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웠고, 어떤 것은 짐작에 그쳤다.

작가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그의 신체와 푸릇하게 자라나는 자신의 신체와의 격차를 느끼고 늙어감을 감각하는 혼란스러움을 떠올린다. 딱딱한 뒤꿈치는, 거칠거칠한 손바닥은, 팔꿈치 위의 주름은 몸이 매 순간 성실하게 겪은 시간의 흔적이었다. 오백 원짜리 동전과 십 원짜리 동전을 헷갈린다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진 어깨와 굽은 허리, 어느덧 네 개만 남은 치아 등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 자신을 향해 방긋 웃어주던 활기찬 할머니와 대조되며 서글픈 감정과 자신 앞의 존재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서늘한 감정을 동시에 선사한다. 생각해보면 애정은 말에서보다 반복된 행동에서 나왔다. 할머니를 온전하게 독점할 수 있었던 시간, 배를 문질러 주거나 귀를 파주는 사소한 행위에서 사랑을 느낀다. 비록 사춘기 시절 잠이 많았던 그를 깨워주거나, 밥 생각이 없는 데도 계속해서 식사를 챙겨주는 다소 귀찮게 여겨졌던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작가는 조건 없는 애정 대신 “그리움, 미안함, 원망, 미움, 결핍과 체념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문서진의 두 번째 개인전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은 이십여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오래전부터 떠올려 보며, 그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기억을 그러모으며 시작되었다. 대화한 기억보다 몸으로 부대낀 추억이 더 선명했던 작가는 그가 ‘살아낸 시간’을 신체의 변화와 언어습관, 반복된 행동에서 반추하며 몸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은 관조적이기보다는 참여적이고, 관객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면서 면과 면, 몸과 몸이 맞닿는 감각을 일깨운다.

전시장인 레인보우큐브는 과거 한 할머니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개조한 곳이다. 오래된 철문을 들어서면 마당에는 낡은 절구, 버려진 장독대, 오래된 서랍장이 보인다. 다른 한켠에는 문서진의 <전화번호부 비석>이 서 있다. 비석이 고인을 기억하는 기록의 한 방식이라면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릴 수 있는 문구가 무엇인지 작가는 고민하다, 그의 손때가 묻은 전화번호부 한 장을 동에 새긴다.

전화번호부는 거의 유일한 그의 기록물이다. 일정한 시기마다 업데이트된 연락처는 새로 추가되지 않고 그리 많지 않은 친척 연락처만이 반복된다. 이는 그가 알고 지낸 사람들의 폭을 전달해줄 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글씨 쓰는 습관을 그대로 담는다. <전화번호부 비석>과 전화번호부에서 추출한 글자를 금속활자로 만들어 벽에 심은 <전화번호부>는 딱딱하고 맨질맨질한 재료의 질감과 활자의 오돌토돌한 글씨를 손가락 끝으로 매만질 수 있게 만들었고, 글을 읽기보다는 촉감으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그의 침묵: 그의 말>은 말이 거의 없었던 할머니가 반복해서 내뱉었던 말을 모아 할머니의 손글씨로 편집하고 이를 3D로 출력하여 물에 젖은 유산지에 형압으로 찍어낸 작품이다. “밥 먹어” “일어나라” “왜 그래, 응” “제발 좀” “내가 죽어야지” 등 단편적인 구절은 작가가 할머니에게 느낀 복합적인 감정이 또한 그에게도 내재해 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그의 침묵: 죽은 사람과의 대화>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과 할머니 주변인들로부터 수집한 하나의 이야기를 담는다. 관객은 둥글게 마감된 나무토막 위에 힘없이 늘어진 기다란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할머니의 자취를 더듬는다. 책을 읽다 보면 관객은 앉은 벤치에서 시나브로 따뜻해진 온기를 느끼게 된다.

<그의 침묵>과 <전화번호부> <전화번호부 비석> 등의 작업에서 작가는 할머니의 글씨체를 따온다. 글씨체는 한 사람의 습관의 결과물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습관이 ■■“표상으로서가 아니라 태도와 행동의 형태로 우리가 경험한 과거” 라고 말한다. 습관은 오랜 시간 서서히 쌓이면서 노년기에 이르러 더욱 강화된다. 할머니의 생활습관이 그대로 벤 글씨체는 그만의 개성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세월에 따른 힘의 약화는 거스를 수 없어서 어떤 글자는 펜의 무게 때문인지 흔들렸거나 범위를 벗어나 있고 종이의 얇은 두께도 채 압력을 가하지 못해 흔들리거나 옅게 쓰인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에게 무언가를 찍어내는 행위는 면과 면의 만남, 접촉을 의미한다. 이번 개인전은 앞서 자신의 손이 닿는 만큼 관악산의 암반을 탁본으로 찍어낸 <등반지도: 관악산 둘이서 하나되어 암장>(2016), 글씨가 양각된 원통을 만들어 천천히 굴려 나가며 시구를 해안가에 찍어 나간 <비우기: 몸으로>(2018)의 연장선에 있다. 이전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찍어내는 행위적인 측면, 퍼포머로서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면 기획전 «걸레색»(2021, 범일운수종점Tiger1)부터 발전시킨 «맨질맨질하고 딱딱한 삶에 대한»에서는 닿고자 하는 대상을 구체화하면서 이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문서진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단순히 개인의 기억으로 남기기보다 작품을 매개하여 몸에서 몸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레인보우큐브 공간 곳곳에 침투해 있는 사물 오브제 작품은 사용된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대변한다. 작가는 지금 시점의 낡은 사물이나 주름진 대상에서 그것이 살아온 역사를 되짚는다. <물질 놀이>(2013), <물길 연작>(2015-2016)에서 행했던 실험이 물질에 인공적인 힘을 가했을 때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떠올려 보던 태도를 사물에 적용하여 사물의 현재 모습을 보고 이전의 변화 과정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그 관심이 이행한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길에서 몇 번이고 지나가는 자동차에 바스러진 낙엽을 주운 <나는 당신의 딸>, 햇빛에 바삭바삭 말라가는 재생지를 모은 <다음 생에는 친구로 만나요>, 닳고 닳아버린 슬리퍼의 뒤축을 드러내는 <나는 당신의 무덤이야>와 같이 작가는 여전히 무언가의 변화 과정에 관심이 있지만 현재에서 순차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을 보는 데 흥미를 가진다. 작가는 대상의 질감, 사용새, 촉감 등을 시선으로 훑으며 그것의 역사를 거슬러 오른다. 이는 할머니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사물로 확장된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사물 혹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이제야 조심스레 건네보는 말처럼 느껴진다.

삶은 몸에 새겨진다. 몸은 시간의 흔적을 가장 성실하게 담는 그릇이고 늙음이란 세월의 변화를 몸에 새기는 과정이다. 자신의 것이랄 것을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을 작가가 기억해내는 방식은 글로 쓴 기록이기보다 그의 총체적 삶이 깃든 몸과 부대낌이며, 끝내는 사랑으로 기억될 찌꺼기 같은 감정들이다.

 

■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김희상 옮김, 돌베개, 2014, p.23.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22, p.651.

 


 

 

 

 

전시 사진 : 홍철기 / 사진 제공 : 문서진

 

전화번호부 비석 Phone Book Headstone, 동 bronze, 10×10×99 cm, 2022

 

 

 

 

 

 

 

 

 

 

 

 

 

 

다음 생에는 친구로 만나요 See You Again as Friends, 재생지, 목재 recycled paper, lumber, 가변설치 variable installation, 2022

 

 

 

 

 

 

 

 

 

 

 

 

 

 

 

나는 당신의 무덤이야 I Am the Place Where You Are Buried, 신던 슬리퍼에 굳은살, 석고 calluses on slipper, plaster, 13×18×45cm, 2022

 

 

 

 

 

전화번호부 Phone Book, 벽에 알루미늄 활자 letters made with aluminum pieces, 가변설치 variable installation, 2022

 

 

 

 

 

 

 

 

 

 

 

 

 

 

 

 

 

 

 

 

 

 

 

 

 

 

 

 

 

당신과 나는 여전히 어리고 이미 늙었어 You and I Are Still Young and Already Old,
휘발된 파란색 홈매트 오일 volatilized blue oil of mosquito repellent mats, 18×24 cm, 2022

 

 

 

그의 침묵: 그의 말 Her Silence: Spoken Words, 종이에 압인, 목재 letter press on paper, lumbers, 가변설치 variable installation, 177×203×97 cm, 2022

 

 

 

 

 

 

 

 

 

 

 

 

 

 

 

 

 

 

 

 

 

 

 

 

 

 

 

 

 

 

 

 

 

 

 

 

 

 

 

 

 

 

 

 

나는 당신의 딸 I Am Your Daughter, 발견된 오브제(나뭇잎) found object(leaf), 13×20 cm, 2022

 

 

우리는 모두 실패한 사랑의 로맨틱한 결과가 아닐까 All We Are the Romantic Consequence of Failure of Love,
종이 한장의 계란판 a sheet of paper of egg carton, 22×21×8 cm, 2022

 

 

 

그의 침묵: 죽은 사람과의 대화 Her Silence: Dialog with the Dead,
종이에 인쇄, 목재 print on paper, lumbers, 가변설치 variable installation, 75×140×70 cm, 2022

 

 

 

 

 

 

 

 

 

 

 

 

 

 

 

 

 

만져진 사물: 어둠 속에서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 Palpable Things: Groping an Elephant in the Dark,
수제종이 handmade paper, 가변설치 variable installation, 2022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었는지 What Was Your Happiness,
드릴비트에서 뽑은 자작나무 합판 20t 네 장, four sheets of birch plywood found in drill bit, 2×2×6 cm, 2022

 

 

 

 

 

 

 

 

왜 나 못본척 했어요? Why Did You Pretend You Didn’t See Me?
마른 종이 dried paper, 11×15×7 cm, 11×25×8 cm, 2022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 본인 또는 레인보우큐브에게 있습니다.
전시에 사용된 작품, 텍스트, 디자인 등은 참여 당사자의 고유 창작물입니다.
전시 연출과 전시 결과물은 작가 또는 기획자가 함께 만든 전시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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