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리 개인전 《 A Spider Trapped in a Butterfly Trapped in a Flower 》
김채리 개인전 《 A Spider Trapped in a Butterfly Trapped in a Flower 》
2024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전시기간 : 2024. 7. 19 ~ 8. 4
장소 : 레인보우큐브
작가 | 김채리
서문 | 배혜정
영상 | 박치치
사진 | 이석기
기획 | 김성근
주최 | 레인보우큐브
후원 | 서울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 본 전시가 진행되는 레인보우큐브는 2024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신진작가 홍보 마케팅,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공간 지원사업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서로 어울리는 항목끼리 줄을 그으세요)
[…] 금빛 가는 실로 검은 바다에 수를 놓던 한 마리 새가
바다를 물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그만 탁 놓아버리면
물결이 도시를 뒤덮을 거다
내 공책의 행과 행 사이로 물이 들어올거다
새들은 발바닥에 쌍시옷이 두 개 달렸다
(한강의 다리 난간 위 새 한 마리
왼발에 미래
오른발에 과거
었, 겠, 었, 겠, 었, 겠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가고
내 일기엔 쌍시옷이 싸인다)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이 세상이 너무 좁다고 폐소공포증에 걸린다)
그리하여 나는 공책에 긴 줄을 내리그으며 […]
-김혜순, 〈쌍시옷 쌍시옷〉 中
세계는 생명을 가진 것과 생명을 잃을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진술은 틀린 것이기도 한데 생명을 가진 것이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마나 한 무의미한 진술을 따라 읽어내리는 시간에 포획된 것은 생명을 가진 것에 대한 펼쳐진 이미지와 생명을 잃을 것에 대한 애도의 느낌일 것이다. 진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고 해서 내게 포획된 이미지와 느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김채리는 꿈의, 일상의, 스크린타임 속의 대상들에서 시작한다. 그 세속의 대상들은 그날의 대화, 그 때 나의 의식의 흐름 속에서 건져진 것들이기도 스크린타임 속 알고리듬 속에서 나에게로 온 어떠한 대상이기도 해서 이 대상이 걸러져 선택되는 과정은 마치 다이어리를 쓰는 것과 같다. 이렇게 출발한 드로잉의 시간에서 작가는 나비에 꽃에 그리고 거미에 사로잡혔다. 이 조합에 중층의 의미를 더하는 것은 무대륙의 프리뷰 전시 제목인 ‘Nectar’이다. 넥타의 번역을 유보하게 되는 것은 넥타가 꿀이나 (과)즙으로 번역될 수 있지만 검은 배경의 거미 그림 Incy Wincy Spider의 그 영롱한 액체들 때문이다. 일견 이 액체는 거미줄에 맺힌 영롱한 아침의 이슬같기도 하지만 이 역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거미줄 위를 수놓은 꽃들 가운데의 엄청 작은 거미¹는 갇혀 있기도 하여, 그렇게 이 액체는 갇힌 거미의 눈물로도 꽃들에서 흘러내린 꿀로도 죽어 부풀어 오른 거미에게서 빠져 나오는 체액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저올린 것들은 이러한 느낌의 극단을 진자운동한다. 의미라 명명할 수 없는 것은 작가 또한 의미를 규정하기 보다는 우리 역시 함께 그 양면성 내지 필연적 이면을 동시에 사유하기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이질적인 요소들의 변증적 탐구가 ‘경이’라 불리는 미의 탐색으로 여겨져 ‘언캐니’의 느낌과 연동되는 반면 작가에게 상충되는 요소들의 규합은 어떠한 합의 가능한 미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은 아니다. 즉 절차는 유사할지 몰라도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미학적 탐구의 목표에 도달하기 보다 다시 삶의 영역 내지 세속의 영역으로 하강하는 일에 가깝다.
김혜순의 시에서 일견 작위적으로 보이는 언어의 유희는 환상의 영역에 도달했다가 도시의 타자인 새, 그 새의 몸체를 거쳐, 과거와 미래의 시간성을 경유하고 다시 오늘날의 우리에 이른다. 김채리에게 그의 의식의 채에 걸러진 것들은 모눈종이, 오선지 또는 스테인리스의 찬 표면, 은실로 수놓은 패브릭, 털실이 쏘아진 두터운 직물 위에서 나의 일상의 시간들을 역으로 소환하고 그 스크린타임의 비물질성에 형상을 부여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전시에 부유하는 또 하나의 이미지는 바로 ‘눈’이다.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김혜순, 〈날개 환상통〉 中
다른 시의 한 구절에서 시인은 시선의 다층적 층위를 은유한다. 눈은 보기위한 신체의 기관이지만 빛의 도움이 없이는 무용하고 눈동자는 꿈을 보기 위해서는 하등 소용이 없음에도 꿈을 보는 도구로 소환된다. 김채리는 단어와 이미지의 편린으로 의식의 순간들을 이미지화하는 한편 이미지를 포획하는 신체로서의 눈, 물리적 대상과 직접적인 접촉을 가능케 하는 신체로서의 손을 다시 제시한다. 전시장 중앙의, 스테인리스에 모노톤으로 서늘하게 새겨진 그 눈과 손은 그와 우리의 세계에 둥둥 떠도는 이미지들을 지켜보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시선과 손을 다시 인지하도록 만든다. 눈과 손의 주체로서의 나는, 여기서 얇은 경험의 언어를 덧입어 탑재하고 다시 세계로 나간다_배혜정
1) ‘incy wincy’는 ‘무지 작은, 엄청 쪼꼬만’으로 번역되는 라임을 갖춘 아동 언어로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한국어 동요 원곡의 제목이 Incy Wincy Spider이다.
2) 할 포스터의 Compulsive Beauty(1993) 참조.
Black Rose Dragon – Very fragile affinity, 스테인리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아크릴릭, 브라켓, 개 목줄, 1310 × 1310 (mm), 2022
Incy Wincy Spider, 천에 터프팅, 1350 × 1350 (mm), 2023
Trinity Drawing Series Proto: 00, 모눈종이에 연필, 색연필, 라벨스티커, 210 × 300 (mm), 2022
Because of You, 스테인리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아크릴릭, 590 × 840 (mm), 2022
Nectar, 천에 터프팅, 930 × 890 (mm), 2024
Nocturnal Diary Series, 악보에 연필, 250 × 180 (mm), 2022
Nectar, 천에 터프팅, 400 × 600 (mm), 2023
A Spider Trapped in a Butterfly Trapped in a Flower, 천에 터프팅, 750 × 820 (mm), 2024
Love, Light, Gravity, 캔버스에 아크릴릭, 에폭시, 울, 600 × 725 (mm), 2023
Love, Light, Gravity, 캔버스에 아크릴릭, 에폭시, 울, 800 × 1000 (mm), 2023
Witty Knitty Sloppy Kitty, 펠트천에 울, 실, 니트, 디지털 프린트, 2022-3
Trinity Drawing Series 04, 모눈종이에 연필, 색연필, 라벨스티커, 210 × 300 (mm), 2023
Trinity Drawing Series Proto: 00, 모눈종이에 연필, 색연필, 라벨스티커, 210 × 300 (mm), 2022
Trinity Drawing Series 03, 모눈종이에 연필, 색연필, 라벨스티커, 210 × 300 (mm), 2023
Trinity Drawing Series 01, 모눈종이에 연필, 색연필, 라벨스티커, 210 × 300 (mm), 2023
Mysterious Gaze, 천에 터프팅, 800 × 1230 (mm), 2024
Black rose dragon – on its own, 스테인리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아크릴릭, 브라켓, 개 목줄, 180 × 180 (mm), 2022
La Mirada Profunda, 석판에 잉크, 210 × 269 (mm),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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