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진 개인전 ‘던져진 사건들’
제 2회 ‘처음의 개인전’ 공모 선정작 │ 권소진 개인전
< 던져진 사건들 >
레인보우큐브 갤러리 | 2018.7.6 ~ 15
참여작가_권소진
기획_김성근
글_전영진
주최_레인보우큐브 갤러리
던져진 사건들_권소진
사건은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시간과 맞물려 지속되는 사건들 그 한 가운데에 있다. 이처럼 상황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이미지를 지각하는 과정은 현재라고 칭하는 흘러가는 시간의식 속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본다는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역할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우리가 객관적인 눈이라 여기는 카메라의 시선조차도 이미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태도로서 바라본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관찰자로서, 혹은 사건에 포함된한 부분으로써 일어남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본인이 인지한 사건들은 사적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감각이라는 혼재된 시공간 속에서 이해되며 실재와는 또 다른 이미지로 발현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으로 채워진 ‘머릿속에 그리듯’ 시뮬레이션(simulation)된 사건은 실제 바라본 어떤 장면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 것과 보지 못한 것들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희미하고 불분명한 것, 뚜렷하고 선명한 것의 정도로 구분 짓게 되는데, 결국 어떤 사건을 바라보고 지각하는 과정에서 가장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은 개인이 느끼는 사건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지각의 선택과 판단, 그리고 유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한 지각의 과정은 사건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본인의 작업은 특정 사건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포착한 하나의 사진 이미지일수도 있고, 혹은 실체가 없이 언어로만 설명되는 미지수의 사건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선택된 사건은 특별하거나 초현실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미지로 느껴지는 것들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건의 정보와 화면의 이미지는 서로 치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긴장감 있게 유지한다. 이는 경험한 사건과 그려진 사건의 일치나 불일치와 같은 반전을 주고자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틈새의 연결고리 사이에서 연상되는 요소들을 은근슬쩍 삽입하면서 예상과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시선을 장치들을 넣고자 한 것이다.
‘사이-공간’에 놓인 부수적 디테일(detail)들은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거나 상상도 못할
것이 아닌, 있을 법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거나 사라지며 사건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데에 있어 깊게 관여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연대기적 흐름을 묘사하면서 삽화적인 성격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불확실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통해 사건의 표면적 이미지보다는 그 이면에 잠재된 시간과 운동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결국‘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문제에서 본인의 지각이 어떠한 지점을 실재와 다르게 기억하고 인식하는지, 혹은 어떠한 이미지가 연상되고 이것들이 재-연결되어 상황을 만들어 가는지에대해 실험하고자 한다.
사건의 층(layer)을 메우는 그림_전영진
사람의 눈은 한 번에 두 장면을 응시할 수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로 그려낼 때조차 장면에서 캔버스로 눈을 옮겨 오는 짧은 순간의 기억으로 장면을 그려 낼 수밖에 없다. ‘보고 그린다’는 말이 ‘보며 그린다’는 말보다 익숙하고 편한 이유는 그 속에 담겨 있다. ‘보며 그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사건의 현장 혹은 자연의 장면과 같이 실제 있을법한 이미지를 그리는 누구라도 기억이라는 장치 없이는 재현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소진 작가는 그중에서도 기억의 왜곡이 확실해진 것들, 예를 들어, 오래된 사진 혹은 언어로 남은 기억 등을 수집해 하나의 화면으로 만듦으로써 실제와 닮은, 실제와 다른 지점을 짚는다.
작품의 사실성은 실제의 사물과 얼마나 비슷하게 재현해 냈느냐의 문제로 읽히는 경우가 많지만, 권소진 작가의 작품에 있어 사실성은 실제와 기억 사이가 아닌 기억과 표현 사이, 즉 왜곡된 기억 자체를 그리는 것에 존재한다. 화면은 여러 개의 사건 층으로 겹쳐져 있거나 일부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그려져 실제 사건의 정보를 더욱 누락시키고, 인물들의 표정은 알 수 없거나, 가려져 있거나 혹은 흐릿하게 표현되어 각 층위에 쌓인 사건들 사이의 공간을 확대한다. 게다가 각 작품의 제목은 퀴즈를 풀기 위해 던져진 키워드처럼 넓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간결한 단어를 선택해 장면과 제목 사이에도 빈 공간을 둔다. 그 공간들은 오롯이 관객의 경험으로 기인한 상상으로 메워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험에 의한 기억을 표현하는 것은 감각기관으로 습득한 정보를 언어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사건의 파편을 화면에 던져두고 이 장면을 이야기로 ‘꾸며낼’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관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무슨 사건을 그린 것일까?’라는 질문은 관객이 작가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작품은 선명하거나 흐린 층들로 겹쳐진 사건의 장면들과 제목 사이의 틈을 감상자의 기억이 메우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기억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우리들 모습 그대로를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기억 조각을 공유하면서도, 개별 감상자의 기억을 스스로 더듬을 시간을 마련한다.
<환영합니다! 친절상담>, 각 12ⅹ8(cm), oil on paper, 2018
<Wires>, 72.7ⅹ90.9(cm), oil on canvas, 2018
→ <기울어진 머리_The Leaning Head>, 145.5ⅹ97.0(cm), oil on canvas, 2018
막[幕] 시리즈_<Falling Stone>, 40ⅹ40(cm), oil on canvas, 2018
<Two Savers>, 72.7ⅹ90.9(cm), oil on canvas, 2018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2>, 72.7ⅹ90.9(cm), oil on canvas, 2016
<개를 찾는 남자>, 130.3ⅹ324.4(cm), oil on canvas, 2017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1>, 97.0ⅹ130.3(cm), oil on canvas, 2016
<계단을 올라가는 여자>, 90.9ⅹ72.7(cm), oil on canvas, 2015
<개에게 먹이를 주는 남자>, 가변크기, oil on paper, 2017
<개를 측정하는 남자>, 22.7ⅹ15.8(cm), oil on paper, 2016
<커튼을 다는 남자>, 각 130.3ⅹ89.4(cm), oil on canvas, 2016
<구경꾼과 나무꾼>, 45ⅹ45(cm), oil on canvas, 2018
<잘린 허리>, 23ⅹ16(cm), oil on canvas,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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